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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3_호수가 보입니다.

호수가 보입니다.

마른 바람 한 줌을 채 삼키지도 못하고 나는 주저앉을 것만 같습니다.

수통의 물은 떨어진지가 오래고.
다리는 저려오다 감각을 잃어가고.
땀에 절었던 몸은 털지도 못한 옷의 먼지에 딱딱하게 달라붙어.
초췌한 몰골로 망막 안 물의 자취를 따라갑니다.

모래의 바다와 검은색 바위를 지나치며
수많은 밤의 꿈 속 물의 자취를 맡으며
나를 죽일 듯 하는 목마름에 겨워
걷고 또 걸으며 폭양에 미쳐 울고 웃으며

마른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메마른 혀를 굴리며
호수를 향해 팔을 뻗습니다.

몇 번인가 마주쳤던 호수의 기억 속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파랑색 볼펜으로 마구 칠한 듯한 색의 호숫가에는 모래뿐이었습니다.
그것은 하얗고 누런 모래의 사막 위에 얹힌 파랑색 사막이었습니다.
그래, 꿈 속에서 나는 호수 위에 누워 천천히 파묻혀 들어갔습니다.
눈 위로 파랑색 하늘과 파랑색 호수가 수 없이 쏟아지는 꿈 가운데.

나는 울었습니다.
마른 사막에. 마른 하늘에. 마른 바람에. 마른 호수에. 마른 눈물에.

호수가 보입니다.
나의 눈은 멀리 호숫가에 놓인 돌멩이를 호수에 던져넣는 상상을 하는가 봅니다.
파랑색 호수에 빠져들까 두려워 돌멩이를 호수에 던져넣는 상상을 하는가 봅니다.
그 속 가늠하기 힘들어 지친 몸으로 돌멩이를 호수에 던져넣는 상상을 하는가 봅니다.

꿈은 길고 늘어져.
호수로 가는 길도 날마다 길고 늘어지는 모양입니다.


2006. 3. 23. am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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