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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에 관한 소고

#. 보험광고를 보다가 짜증나서.

보험 자체에는 나쁜 인상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보험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단어는 대부분 좋은 느낌의 단어들 - 행복, 미래, 가족, 책임, 안정, 내일 따위의 - 일 것이다. 보험에서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아마 일차적으로는 보험회사의 엄청난 광고 물량공세와 마케팅 활동 덕이겠지만, 보험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보장해주고 지켜준다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험 광고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주의깊게 들어보라. 돈에 관계된 언급을 할 경우에도 '보장'이란 단어를 얼마나 사용하는지, 심지어 요즘에는 돈에 관한 언급보다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보험 없이 이런거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은 모두 자기네 보험에 맡기라는 광고까지 등장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 보험업은 어디까지나 수익을 추구하며, 금융업의 일종이다. 보험 회사의 이미지 광고에 휘둘리다보면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기 쉽지만, 보험회사는 수익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는 법인이다. 아무리 보험회사가 고객의 인생을 책임져주고 걱정해주고 온갖 관심을 쏟고 싶더라도, 보험회사가 고객에게 걷어들인 보험료로부터 수익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보험회사는 파산하고 사업을 접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동안 납부했던 보험료 또한 공중으로 날아가버릴 것이고.

이러한 보험 회사의 기본적인 속성은 보험과 관련된 각종 분쟁 사례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고객은 가급적이면 보험료를 내고 최대한의 보장(보험회사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보장'!)을 받으려 하고, 보험사는 반대로 보험료를 받아서 가급적 고객에게 최소한의 보장을 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고객에게 가는 보장이 적으면 적을수록 보험사에게는 이득이 되니까.

이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보험의 취지는 기본적으로는 보험 가입자의 돈을 십시일반 모아 보험 가입자가 당할 수 있는 각종 재난에 대응하는 것이다. '보험을 든다'라는 관용어가 이러한 보험의 취지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우리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만큼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일까?  



위 자료는 모 보험사 재무 자료 현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료가 보험사 재무 운영의 모든 부분을 대표할만한 자료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경향을 알아보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 신문 기사도 읽어보자 : 보험료 1천원 내고 보험금 595원 받는다 http://www.seoulfn.com/news/articleView.html?idxno=78533

보험사는 실질적으로 자신들이 고객들에게 뭔가 좋은 일을 해 주고 있다고 열심히 설득한다. 그런 설득의 연장으로 광고를 집행하며, 보험사의 직원들은 고객의 요구에 열심히 응대하고, 보험사 영업사원들은 보험을 팔기위해 열심히 다리품을 판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비용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보험사 보험 광고를 보면서 저 광고를 TV에 싣기 위해 얼마만한 광고비가 지출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매일 보험 영업 전화를 거는 전화 상담원들 보험 영업 사원의 월급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결국 보험료와 보험료를 운용하는데서 나오는 수익에서 나온다. 거칠게 말한다면 '고객의 삶을 보장한다'고 주장하면서, 고객의 돈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10만큼의 비용을 부담하고 10만큼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적어도 현재의 보험 체계를 통해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실질적으로 보험을 통해 의료비에 대한 보장을 받은 사람이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여러 사람의 10이라는 비용을 모아서 보험사가 일부(위의 수치에 따르면 6?)의 혜택을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


#. 그러면 어쩌라고?

보험회사가 신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 보험회사가 법이나 각종 규제에 묶여 있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논리일 것이다. 보험회사가 보험료는 꼬박꼬박 받았는데 치료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고객의 신뢰를 떠나 법적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뉴스에서 보험금 지급 관련 소송의 소식을 들으면서, 보험사를 신뢰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곱씹게 되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보험사가 이러한 소송을 벌이는 것을 탓할 수도 없다. 보험사가 보험 운용에서 적자가 나면 어떻게든 다른 부분에서 그 적자를 메워야 하고, 그러자면 누군가 손해를 보든가 아니면 보험회사가 망하는 수 밖에 없으니.

정부에서 건강보험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면 이상적일 수는 있겠으나 - 잔인한 이야기지만 - 모든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한국에서 모든 사람에게 의료비를 무상으로 지원해준다고 한다면 그로 인해 지출될 의료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우리가 소득의 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러한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와중에 건강보험을 민간으로 이양하겠다는 정부의 이야기는 그냥 우스울 뿐이고.

기존의 건강보험이 커버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보험사가 메워주는 현실 - 어떻게 보면 '존재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보험사에 납부하는 - 에서, 다른 방법을 통해 건강보험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 보험의 취지를 지키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나도 이런저런 보험을 들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공짜로 돈을 뺏기는 듯한 이 기분이 좋지만은 않더라 ... 해서 이래저래 궁리를 해보곤 한다. 그러다보니 생각난 것이 계(곗돈의 그 계 말이다) 형태의 상부상조 조직이었다. 운용 방식 자체는 심플하게, 50~100명 정도의 규모로 하나의 계를 만들고 그 계 내에서 상해 등으로 의료비 지출이 발생하면 공동으로 이를 지출하는 방식. 정기적으로 비용을 납부할 필요도 없고, 지출이 발생했을 때만 이를 공동으로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계를 조직한다면 어떤 질병에 대해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할지도 미리 정해져야 하겠지만, 일단 암에만 적용해 본다고 가정해 보자. 나라지표의 암 발생률 현황(http://www.index.go.kr/egams/stts/jsp/potal/stts/PO_STTS_IdxMain.jsp?idx_cd=1439)을 참고하면, 2005년도 한 해동안의 전체 암 발생률은 0.2929%라고 한다. 100명이 하나의 계를 이루고 있다면 0.3명의 환자가 발생할 확률이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암의 평균 진료 비용은?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통계 자료가 없다고는 하지만, 일단 한겨례의 기사(암 진료비 평균 1000만원,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1/2004/12/005100031200412291743181.html)를 인용한다면 진료비와 건강보험 비적용항목을 합쳐서 1000만원 정도로 볼 수 있고, 이중 500만원 정도는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지급되며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은 500만원 정도로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500만원 * 0.3 = 150만원을 "1년 동안 암 환자로 인해 지출될 수 있는 평균값"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으며, 100명의 계가 이러한 진료비를 공동으로 부담한다면, 100명이 각자 1.5만원을 부담함으로써 1년간의 암 진료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물론 굉장히 러프한 계산이다. 예외적인 경우의 수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백혈병 같은 경우는 진료비가 다른 암과 달리 몇천만원 수준이며(대신 국민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비율도 높긴 하다), 입원에 따른 비용도 다른 식으로 산정될 수 있고, 가족 구성원 수, 가족 구성원의 나이에 따라 질병에 걸릴 확률 등 실제로 이러한 조직이 보험에 대응할 때 풀어야 할 문제는 상당히 많을 것이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운용의 문제보다는 구성원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 이 사람들이 정말로 날 위해 치료비를 부담해 줄 것인가?


#. 어쨌든,

꼭 이 방식이 아니더라도, 금융업을 영위하는건지 보험업을 영위하는건지 분간도 잘 되지 않는 요즈음의 보험 회사에 대한 대안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으로 보험이라는 것은 위험을 상쇄하기 위한 금융상품의 일부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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