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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 점점 자신의 형체를 잃어간다. 정확히 어떤 구성원을 말하는지 알 수도 없는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이 되고, 거대함 뒤에 실체를 숨긴 국가가 원하는 국민이 되며, 뭐가 어떻게 좋은건지 알 수도 없는 좋은 사람이 되어, 서로서로 비슷비슷한 얼굴을 내밀고 마트 진열대에 죽 늘어선 상품들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을 지어 어디론가 조금씩 밀고 밀려간다. 어제 그 사람의 자리에 비슷한 형체의 다른 사람이 들어서고, 어제 그 가게의 자리에 비슷한 모습의 다른 가게가 들어선다. 항상성을 갖춘 거대한 생명처럼, 사람도 어제의 그 가게도 무엇인가의 일부가 되어 내 생각 속에서 같이 움직여간다. 나는 뉴스 속에서만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경제가 아픔에 겨워 몸부림치는 동물이 되는 광경을 상상한다. 형체를 잃은 사람들은 그 거대한 동물 속에서 교체 가능한 부품처럼, 때로는 선택되고, 때로는 버려지고, 때로는 죽어간다. 그리고 또 태어난다. 하지만 내 눈을 통해서 실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날이 갈 수록 형체를 잃어 불확실한 점들이 되어가고, 관념 속의 동물은 내 생각 속에서 점점 뼈대가 세워지고, 살이 붙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개체를 감각할 수 없는 하나의 세포처럼, 나 또한 경제를 감각할 수 없이 상상할 따름이다. 생명체의 몸에서 잘려나가고 죽어가는 세포는 무엇을 느낄까. 사회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무엇을 느낄까. 내가 사회 혹은 기업 혹은 경제와 같은 관념 속의 동물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포가 개체를 감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의 생각과 세포의 감각은 같은 종류의 것일까.

물질에서 단세포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다세포에서 개체로, 개체에서 군집으로, 그리고 더욱 큰 군집으로.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