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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of Mind

Society of Mind: 2장 전체와 부분

2장은 올라오지 않을 줄 아셨겠죠.
하지만 저는 언제나 기대를 배신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 갑니다-

  

 


 

 

2장 전체와 부분



개개의 것에 관련성을 부여하는 것이 정신의 특징이며, 이러한 복잡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물질의 형태, 구성, 상태의 복잡함은, 이 물질이 정신의 토대가 된다 할지라도 모두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 아이작 아시모프

 

 

2.1 구성요소와 연결

우리는 쌓기 기술이 보다 단순한 집기놓기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점을 살펴봤다. 이제 우리는 차례대로 이들이 더 간단한 요소들로 구성될 수 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집기찾기가 찾은 블록을 붙잡기 위해 움직이기를 사용하여 손을 옮겨야 한다. 놓기움직이기를 사용해 손을 움직여 블록은 탑의 꼭대기에 놓아야 한다. 이제 쌓기의 모든 기능이 간단한 요소들이 할 수 있는 일로 환원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부분이 남았다. 여기서의 쌓기는 단순히 발견하기, 집기, 놓기 등 요소들의 모음에 불과하다. 이들 일꾼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적절한 연결망이 없는 한, 쌓기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서의 일꾼들 / 관료주의 일꾼들

 

왼쪽의 일꾼 목록을 보고서, 쌓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을까? 그럴리 없다. 어떤 일꾼이 다른 어떤 일꾼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인간 사회에서 각 개인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그 사회가 어떻게 돌아갈지 예측할 수 없다. 이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는지-누가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는 거대하고 복잡한 사물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첫번째로, 우리는 먼저 개별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각 요소가 어떤 요소에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러한 국소적인 상호작용이 어떻게 결합되어 외부에서 관찰되는 전체 시스템의 행동을 나타내는지 이해해야 한다.

인간 뇌의 경우, 이 세 가지의 문제를 푸는 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먼저 우리는 뇌세포의 동작 방식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뇌세포는 수백 가지 유형이 있기 때문에 이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각 유형의 세포가 다른 유형의 어떤 세포에 연결되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종류는 수천 가지가 넘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인, 우리의 수십억 뇌세포가 어떻게 사회를 이루는지에 대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이론과 조직의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의 뇌가 단순한 동물로부터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될 수록 이 작업은 좀 더 쉬워질 것이다.

 

 

2.2 소설가와 환원주의자

신비를 풀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통해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어려울 경우, 우리는 기존의 낡은 이론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이론을 시도해 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내 생각에 이러한 결정은 부분적으로는 연구자의 개성에 달린 일이다. 낡은 이론을 고수하는 측을 이제부터 "환원주의자(reductionist)"라고 부르고, 새로운 가설에 도전하고자 하는 측을 "새로운 이론가(novelist, 이 단어는 보통 ‘소설가’로 번역되나 여기서는 novel이란 단어의 ‘참신함’이란 의미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옮긴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환원주의자의 주장은 대개 옳다. 새로운 이론은 과학의 신중한 태도 앞에서 오래 버텨내기 어려운 법이다. 과학의 왕국 밖에서는 새로운 이론가들이 득세한다. 낡은 이론의 허점이 계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과학이 이렇게 몇 안되는 설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물리학은 사실상 이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원소가 존재하는지, 중력과 어떻게 간섭하는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환원주의자는 주목할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도대체 무엇이 몇 안되는 기본적인 규칙으로 세계의 수 많은 사건을 설명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화학과 물리학을 심리학의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뇌 속의 원자들은 모든 물질의 형태를 좌우하는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렇다면 동일한 물리적 법칙을 통해 우리의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또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개별적인 수십 억 뇌세포의 동작 방식을 이해하더라도, 이 사실은 뇌가 어떻게 일꾼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한다. "생각의 법칙"은 개별적인 뇌세포의 특성에 기인할 뿐만 아니라, 뇌세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방식에도 의존하고 있다. 이들 연결은 "일반적인" 물리 법칙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유전자에 있는 수백만 조각의 정보가 특별한 방식으로 배열됨으로써 생성된다. 당연하지만 "일반적인" 법칙은 우주 만물에 적용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일반적인 법칙은 아무것도 설명해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는 심리학이 물리학의 법칙을 배제하고 자신만의 법칙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심리학에 필요한 것은 다른 법칙이 아니라, 보다 상위 수준에서 동작하는 추가적인 이론과 법칙인 것이다. 쌓기가 대리자로서 동작한다는 아이디어는, 쌓기가 하위 수준에서 일꾼으로서 동작한다는 아이디어와 상충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상위 수준에서의 설명은 하위 수준에 대한 지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에 덧붙여지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후에 "수준"에 대한 아이디어를 여러 번 다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심리학이 여느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분야로 환원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소수"라는 단어의 의미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물리학을 예로 들면, 우리는 여남은 수의 기본적인 법칙에 따른 설명에 익숙해져 있다. 심리학에 있어서 우리의 설명은 수백 개의 이론을 서로 결합해야 할 것이다. 물리학자는 수백 개라는 숫자가 많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인문학자는 이 숫자가 너무 적다고 여길 것이다.

 

 

 

2.3 부분과 전체

우리는 간혹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러한 표현은 "전체론적(holistic, 생명체와 같이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전체의 일부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에 따라 전체론적으로 구성된 사물은 그 전체로써 이해되어야 한다는 이론. -옮긴이)"과 "게슈탈트(gestalt)"같은 단어처럼 학술적인 느낌을 주며, 명확하고 한정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단어의 실질적인 기능이 어떠한 개념을 간과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곤 한다. 우리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물들을 결합할 때 "게슈탈트"라는 단어를, 아직 우리의 이해가 부족한 예기치 못한 현상에 가로막혔을 때 "전체론적"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두 부류의 질문 - 앞의 것은 "주관적"이고 뒤의 것은 "객관적"인 질문들을 살펴보자.

  무엇이 하나의 그림을 단지 선들의 모음, 그 이상으로 만드는가?

  개인의 성격은 어떻게 개인적 특징의 모음, 그 이상이 되는가?

  어떤 방식으로 하나의 문화는 여러 풍습의 모음, 그 이상이 되는가?

  무엇이 하나의 탑을 블록의 모음, 그 이상으로 만드는가?

  왜 하나의 사슬은 여러 개의 고리, 그 이상인가?

  어떻게 하나의 벽은 여러 벽돌의 모음, 그 이상이 되는가?

"객관적" 질문의 신비함이 덜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에 대한 답 - 사물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법 - 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벽과 탑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그저 모든 블록이 다른 이웃 블록과 중력에 의해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 된다. 또한 사슬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각각의 고리가 이웃 고리에 어떻게 끼워지는지를 설명하면 된다. 이러한 설명은 성인에게는 그 자체로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어린이었다면 이러한 설명이 그리 간단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며, 실세계의 객체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하므로 이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몇 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예를 들면, 두 개의 객체가 동일한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조차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지식도 "자명하다"라고 여긴다.

그림, 개인의 성격, 문화적 전통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설명하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대개 이러한 "주관적"인 질문들에는 우리의 정신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답변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이들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만 우리가 먼저 우리의 정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관적" 반응 또한 사물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다만 세계 외부에 존재하는 객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 안에 있는 처리 과정과 관련된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예술, 성격, 삶의 방식 등에 대한 질문은 실제로 매우 기술적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려면 우리의 정신 속의 일꾼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배운적이 없는 주제이며, 우리의 과학에서도 거의 연구된 적이 없는 영역이다. 언젠가는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겠지만, 우리가 "전체론적"이나 "게슈탈트"같은 가짜 답을 고수하는 한 그 시기는 계속 늦어질 것이다. 가끔은 사물에 이름을 짓는 일이 문제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지은 이름을 무조건 정확한 의미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2.4 구멍과 부분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질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감각과 사고(思考)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게다가, 육체는 육체를 구성하는 원소로 돌아가더라도 인간의 감각과 사고는 영원불변이라는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고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없으며, 극히 다양한 물질로 이루어진 특정한 부분들 사이의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물질은 우주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또한 이들이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감에 따라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생명은 무엇인가? 생명체를 해부하더라도 그 내부에서 생명을 찾을 수는 없다. 정신은 무엇인가? 뇌를 해부하더라도 그 안에는 정신이 없다. 생명과 정신은 "부분의 합보다 더 큰" 것이므로, 이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쓸모없는 일인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 다음 전체론자(holist, 전체론을 주장하는 사람. 전체주의자가 아니다!-옮긴이)와 일반인의 대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전체론자: "상자를 사용하여 쥐를 가둘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죠. 상자는 여섯 개의 판자에 못을 박아서 만듭니다. 하지만 '쥐를 붙잡거나 담아두는' 성질이 없는 상자에는 쥐를 가둘 수 없음이 명백합니다. 자, 한 개의 판자에는 무엇인가를 담을 수 없습니다. 쥐는 판자 위를 걸어서 도망칠 수 있죠. 한 개의 판자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는 성질이 없다면, 여섯 개의 판자에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성질이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여섯 개의 판자로 만들어진 상자에도 그런 성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로 쥐는 상자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 "놀랍군요. 그럼 무엇이 쥐를 상자에 가둬두는 건가요?"


전체론자: "간단합니다. 상자에 실제로 쥐를 가두는 성질이 없다고 해도, 제대로 된 상자는 그러한 성질을 '흉내내서' 쥐를 속이는 것이죠. 그래서 쥐는 탈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쥐를 가두는 것일까? 당연하지만 상자를 구성하는 각각의 판자가 모든 방향에 대한 움직임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판자의 왼쪽 면은 쥐가 왼쪽으로 가는 것을 막고, 오른쪽 면은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위쪽 면은 쥐가 뛰어오르는 것을 막고, 이런 식이다. 상자의 비밀은 단순히 판자들이 모든 방향에 대한 움직임을 봉쇄하도록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담는다는 단어의 뜻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판자가 그 자체로 어떤 담는다는 성질을 갖는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멍청한 생각이다. 이는 마치 포커에서의 스트레이트 플러시 패와 비슷한 것이다. 다섯 장이 다 갖춰졌을 때에만 가치를 갖는다.

생명정신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생명, 정신이라는 단어는 전체 조합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에, 이들의 구성 요소들을 설명하기 위해 생명, 정신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자에 가둔다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다생각한다 같은 단어들은 여러 관계들이 조합되어 빚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상자라는 단어는 그다지 신비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잘 만들어진 상자의 판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모든 방향에 대한 움직임을 막는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생명이란 단어의 신비함은 이미 많이 퇴색되고 있다. 적어도 생물학자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데, 생물학자는 세포의 화학물질 사이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중요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은 아직 그 신비함을 유지하고 있다. 정신의 일꾼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정신적인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거의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2.5 쉬운 일이 어렵다

1960년대 후반에 쌓기는 MIT 인공 지능 연구소의 컴퓨터 프로그램 형태로 구현되었다. 나는 동료인 시모어 파페트와 함께 기계 손, 텔레비전 눈, 컴퓨터를 결합하여 어린이의 블록 쌓기를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자 했다. 나와 시모어 파페트, 그리고 학생들은 몇 년에 걸쳐 움직이기, 보기, 집기쌓기 대리자를 동작시키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조그만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어린이가 간단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무언가를 배울 때 어린이의 정신 내부의 특정한 부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프로젝트는 천여 개의 작은 기술들 정도면 어린이가 양동이에 모래를 채우는 일을 흉내내는데 충분할까 하는 의문을 우리에게 남겼다. 실제로 인간의 신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은 우리가 심리학에서 배운 것 이상으로, 정신의 사회에 관한 수많은 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

첫 번째 실험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압력 센서가 장비되어 있으며 손 끝으로 사물을 만질 수 있는 기계 손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 다음 컴퓨터에 텔레비젼 카메라를 연결하고, 이 눈이 블록의 가장자리를 서로 구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이 프로그램은 손 자신 또한 인식할 수 있어야 했다. 이 프로그램들이 잘 작동하지 않자, 우리는 시각적으로 인식된 사물이 그 장소에 실제로 있는지를 손가락의 감지 센서를 사용해 확인하는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눈 프로그램이 동작하여 손이 움직일 위치에 아무 것도 없는지를 확인하는 동안, 이 컴퓨터가 손을 여기저기로 이동하도록 해 주는 프로그램 또한 필요했다. 우리는 로봇이 어떤 일을 할지 계획하는데 사용하는 고수준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했으며, 그 외에도 이들 계획이 실제로 수행되었는지 확인하는 프로그램도 작성해야 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동작하도록 하기 위해, 프로그램의 모든 단계(마찬가지로 눈과 손에 관련된)가 정신의 내부에서 계획되었던 대로 외부에서 실제로 이행되었는지 확인하는 프로그램 또한 필요했다. 만약 올바로 수행되지 않았다면 실수를 바로잡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로봇이 작동하도록 시도하면서, 일상적인 수많은 문제가 성인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 퍼즐, 게임 등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블록의 세계를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보기 시작하자, 미처 예상치 못했던 복잡한 사실들이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는 간단한 문제인, 이미 탑에 쌓은 블록을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람에게는 이 문제가 간단한 상식 - "특정 객체가 이미 목적을 달성하는 행동에 포함되었다면, 이 객체를 목적을 달성하는 데 다시 사용하지 말 것." - 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정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는 상황을 인식하는 경험으로부터 배움을 얻는 것은 명확하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이러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예측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불확실성을 다룰 수 있는 규칙에 대해 배워야 한다. 어떤 전략이 최선이고, 어떤 전략이 최악의 실수를 막을 수 있을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예측하고, 상상하고, 계획하고, 예상하고, 예방하는 데에는 아마 셀 수 없을만큼 수많은 조그만 처리 과정이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 과정은 자동적으로 수행되므로 우리는 그저 이 과정을 "보통의 상식"으로 여긴다. 하지만 사고가 그리도 복잡한 것이라면, 어째서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것일까? 우리의 정신이 아직 우리가 정체를 알지 못하는 복잡한 구조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 중 일부만을 알고 있다.

대체로 우리의 지식 체계는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대상에 포함된 특별한 대리자들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체로서는 불완전하게 동작하는 단순한 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완전히 동작하는 복잡한 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단순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복잡한 조직을 필요로 하는)에 대해 내리는 성급한 판단을 우리 스스로 신뢰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정신의 일부는 정신의 다른 부분들이 조용히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2.6 인간은 기계인가?

사람들은 보통 정신이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기계와 유사하다는 말에 불쾌함을 느낀다. 우리는 간단한 탑 쌓기 기술이 작은 부분들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사소한 것들을 모아 실제 정신과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말도 안돼, 난 기계가 아니라고!"

만약 당신이 기계가 아니라면, 기계가 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하니까, 나는 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있어." 하지만 이 대답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난 자동차를 운전해. 그러니까 나는 자동차의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있어." 어떤 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과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아는 것은 천지차이다.

     "하지만 기계는 생명이 없는 존재처럼, 기계적인 방식으로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잖아?"

이러한 반론은 좀 더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사람은 보잘 것 없는 기계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기계"라는 낱말 자체가 구식이 아닌가 싶다. 몇 세기 동안, "기계적"이란 낱말은 도르래, 손잡이, 기관차, 타자기와 같은 간단한 장치를 표현하는데 쓰였다. ("컴퓨터"라는 낱말 또한, 작은 단계의 계산을 멍청하게 수행하는 장치라는 어감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기계가 등장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기계가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만약 몇억 년 전 지구를 찾아 온 방문자가 아직 기는 법조차 배우지 못한 세포 덩어리들을 보고 지구 생명의 운명을 판단한다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의 기계들을 보고서는 미래에 어떤 기계가 존재할지 가늠할 수 없다.

컴퓨터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은 수천 개의 부품으로 가득한 1940년대의 기계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여기부터의 내용은 1980년대에 쓰여졌음을 감안하여 읽도록 하자-옮긴이). 하지만 인간의 뇌는 수십억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세포는 그 자체로서도 복잡하지만 다른 수천 개의 세포와도 연관을 맺고 있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복잡성의 정도에 있어 좀 더 나아가 수백만의 부품으로 구성되며, 인공 지능 분에서는 연구를 위해 수십억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컴퓨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에는 상관 없이 우리는 이전의 개념에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예전 용어를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범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적응하는 태도를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기계"라는 용어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하지만 수사적 표현만으로는 아무 것도 정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논의는 잠시 치워두고, 뇌가 가진 광대한 미지의 메커니즘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해하도록 해 보자.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멋진 기계인지 안다는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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