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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으면, 써지지 않아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인 일을 잘 기록하지 않게 되었다. 달력의 날짜를 기준으로는 언제쯤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다지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일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했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는 한 줄의 글도 적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고 기록을 피했던 것은 아니었다. 수도꼭지를 천천히 잠그면 물줄기가 가늘어져가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줄여가던 글이 어느 순간 똑. 하고 떨어져버린 모양새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기록이 줄어들면서 그에 수반되는 결과인지는 몰라도, 대화 혹은 글쓰기의 화제를 떠올리는 능력 또한 줄어들었다. (내가 별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딱히 고민하지 않아도 이런 저런 글을 마음 가는대로 – 그냥 낙서에 불과하지만 – 얼마든 계속 적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글을 써내려 채운 노트도 몇 권인가 있긴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제를 떠올리는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우직하게 노트를 글로 채우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올해 초에 책 원고를 쓴답시고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가만히 생각해보면 글쓰기는 그 자체로 대화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게 아닐까. 대화를 할 때에도, 글쓰기를 할 때에도,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머리 속에는 표현할 것이 리볼버의 탄알마냥 장전되어 있어야 한다. 방아쇠를 당겨도 탄알이 없으면 공이는 허공을 때릴 뿐이다. (물론 방아쇠를 당길 의욕은 별개의 문제지만)

직업적인 필요에 의해서 최소한의 글쓰기와 번역(이라고 해도 거의 기술적인 내용인)은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기술에 관련된 글쓰기라는 것은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얼마나 달렸는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개인적인 기록을 남긴다든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꾸며낸다든가, 삶에 관련된 이야기를 글을 쓰는 것은 실제 길 위를 달린다는 느낌이 아닌가 싶다. 길 위에서 달리면서 정확히 내가 달린 거리를 가늠하긴 어렵겠지만, 달리다보면 이곳저곳의 골목에 이정표가 생기기 시작하고, 이런저런 사물에 기억이 덧붙여진다. 그리고 이런 기억이 이야기가 된다.

물론 기술 영역(내 직업적 영역은 IT이니, 일단 IT 영역으로 한정해보기로 하자면)도 물론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보니, 항상 MVC 패턴을 어떻게 구현하니 가속도계 기능의 반응 속도니 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있고, 서로 얽히고, 이런 저런 뒷얘기가 있다. 하지만 내 경우엔 그런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직업적으로도 그런 이야기가 내 커리어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아마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다보니, 사실 그런 이야기에 접근할 방법도 없다.

 

… 점점 적다보니 변명 비슷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더 구질구질해지기 전에 이쯤에서 정리하자면 - 사실 키보드를 잡은 의도는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게 아니라, ‘뭐가 됐든 글을 좀 써보자’라는 생각에 뇌의 근육을 푼다는 느낌으로 생각나는 것을 툭툭 던져본 것 뿐인데 결과는 이렇군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더니, 그냥 종잡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처음에 생각한 포스팅 제목으로 내 자신에게 던지는 한 마디 :
쓰지 않으면, 써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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