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라 표현해야 할지도 모를 공포같은 감정으로 지난 15개월을 보냈다. 15개월동안 나는 정체해 있었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떻게 이게 돈이 좀 될까...' 싶은 발상으로 생각한 너절한 것들 뿐이었으며, 새로운 곡을 쓰기는 커녕 연습도 하지 않아 내 목소리에는 통기타에 걸린 줄과 마찬가지로 녹이 피어가고 있다. 게다가 건강조차 해쳐버렸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온 이후 줄곧 집 대출금에 내 남은 은행 잔고를 털어넣는 것이 그나마 그동안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언가를 했다는 자각 없이 시간을 계속 흘려보냈다. '무언가를 했다'라는 자각은 신기하다. 흘러간 시간의 많고 적음에는 관계없이 결국에는 '무언가를 했다'라는 자각, 그리고 그 자각에 연결된 단편적인 기억으로 시간을 감각한다. 그리고 그 감각이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코딩을 하다 보니 문득 창 밖이 훤해져오던 새벽도, 가사에 넣을 단어 하나를 입력하기 위해 사전을 뒤지며 키보드 자판과 delete를 반복적으로 눌러대던 밤도, 커피를 포트째로 마셔가며 번역을 하던 날들도, 내게는 내 앞을 지나쳐가던 옆 얼굴만이 기억에 깊게 패여있다. 그 순간이 나의 마지막 자각이 됐다. 내 기억 속 시간의 흐름을 더듬어보면, 마지막 순간에 내 의식은 항상 그 옆 얼굴을 감각한다.
방금까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한 독립 게임개발자의 블로그를 한참 읽었다. 희망도 열정도 현실 속에서 조금씩 식어가지만 꿈만은 어떻게든 계속 밀고 나가려는, 내게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내게는 뭐가 남아있나 생각해본다. 꿈은 남았지만 열정은 고사하고 에너지가 없다. 데자와가 좋다. 하지만 데자와를 생각한다고 가슴이 뛰진 않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누구지? 무엇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지? 무엇을 떠올려야 뺨이 상기되고 갖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들끓지?
2010년이랜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한다.
가슴이 먹먹하다. 차라리 무감각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모든 것이 무섭다. 하지만 껍데기만 남아서 살아 돌아다니는 나 자신이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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