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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

나는 개똥벌레.

요즘 집안에 큰 돈을 쓸 일이 생겼다. 덕분에 내 지갑은 동결상태. 이 내 한 몸 세상사에 초연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살아가다보면 위시리스트의 항목은 초봄의 새싹마냥 쑥쑥 자라만 간다. 소비를 권장하는 아름다운 자본주의 사회 한국에서 위시리스트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지갑이 동결상태라는 점. 그 전에는 사려고 마음먹으면 뭐 이까짓 것. 하면서 살 수 있었던 물건들이 갑자기 공무도하. 나는 임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하고 구슬피 노래하는 처자가 된 기분이다. 핸드폰도 바꾸고 싶고, 정장도 새로 한 벌 마련하고 싶고, 미루고 미루다가 벌써 1년째를 넘겨버린 스니커즈는 이제 단종되어 구할 수도 없는 사태에 이르렀으며, 노트북도 새로 사고 싶지만 지금은 현재 사용하는 맥북을 팔고 은거해야 할 지경. 그 외에도 이런저런 장비들이라든가, 책이라든가, 음반이라든가... 평소에는 심드렁했던 것들이 온통 마음을 뒤흔들고 설레이게 한다. 튕기는 여자가 더 예쁜 것은 이런 이치인가. 가질 수 없는 너는 그래서 더 소중한가. 옛 노래 가사에 나오던, 요릿집에 들어갈 땐 폼내다가 나올 때는 돈이 없어 쩔쩔매고 급기야는 매를 맞는 양복 입은 신사의 기분을 이해할 것도 같다. 돈 없으면 집에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지만 사람 생각이 그럴 수가 있을까. 자고로 사내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색을 밝히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돈이 있으나 없으나 폼내고 요릿집에 들어가고 싶은 것 또한 자연스러운 물욕이겠거니. 돈으로 욕구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친 이 세상을 원망하기에는 당장 노트북 디스플레이 너머 선물가게의 포장지처럼 예쁘게 꾸민 미소... 같은(아니 왜 이런 표현을) 상품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구매욕은 이미 마음에 뿌리를 박고 혼자서 쑥쑥 잘도 자란다. 이런 히말라야 바오밥나무같은 구매욕. 하지만 내게는 바오밥 새싹을 태워버릴 화산도 없고, 그 이전에 내 별도 없다. 물론 아파트는 더더욱. 그저 맥북을 펼쳐놓고 투덜거리며 일을 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수 밖에.

그냥 집에 가서 책이나 읽다가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밤도 이렇게 울다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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