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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을 다녀오다.

3일간의 예비군 훈련이 끝났다. 대학예비군(...) 훈련만 받아봤던 관계로, 동미참 훈련이고 뭐고 3일동안 강당에 갇혀 잠만 자는 줄 알았더니만 할건 다 하더라. 덕분에 2일차에는 비까지 쳐맞고, 매일매일 담배연기로 샤워하고, 덕분에 3일동안은 그냥 아무 것도 못 하고 심신이 고루 피폐. 하도 몸이 노골노골한 나머지 그래, 목욕탕에 가서 피로한 심신을 삶자...

... 목욕탕이 휴업이다. (정기휴일이 아니라 휴업)

언제부터인지 목욕탕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1년쯤엔가 전에는 집 근처의 전형적인 동네 목욕탕이 문을 닫더니만, 오늘은 그나마 불가마 + 사우나 시스템의 제법 큰 목욕탕이 휴업. 망해버릴만큼 사람이 안 오는걸까. 이제는 다들 집에다가 욕조라도 두고 살 만큼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결국 친구에게 전화해서 목욕탕을 수소문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른 목욕탕이 있었다. 황급히 목욕탕으로 진격.

새로 찾아서 들어간 목욕탕은 휴업한 사우나보다 더욱 낙후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같은 돈 내고 억울하지만 눈물을 감추는게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꾹 참았다. 제길. 예비군 훈련으로 놀란 신체의 근육통에 도움이 될 수중안마기는 소화불량에라도 걸린 듯 울컥거리며 물을 내뿜었다. 수중안마기의 좌석에 자세를 갖추고 앉아보니 이 기계는 더욱 가관이었다. 이것은 마치.. 물속에서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방귀를 뀌는 듯한 감각을 제공하지 않는가. 뭐냐 이건. 일상생활에서 방귀 뀌기를 조심스러워하는, 나같은 방귀소심남을 위한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장치인가.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 강렬하지 않은가. 물이 막 탕 바깥으로 튀어 ...

... 푸르르르 ...

한참 엉덩이 근육이 나른해지고 있을 무렵, 탈의실과 탕을 연결하는 문을 열고 꼬꼬마 초딩 한 마리가 들어왔다. 초딩 녀석은 내 엉덩이께에서 강렬하게 물보라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초딩놈아 이게 어른들의 장대하고 심후한 세계란다 우후후후후...

목욕을 끝내고 나와서 목욕탕 내 아저씨A의 일반적인 역할인, 발톱깎으며 뉴스시청 모드에 돌입하였다. TV에서는 소방서 안전사고 교육에 동원되어 최후를 맞은 학부형들의 사고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17/2007051701008.html) 옆의 아저씨는 치맛바람이 문제라고 했다. 삶은 계란에 찍어먹는 소금을 눈에다 뿌려줄까 하다가 참았다. 아니 대체 한국에는 미친 인간이 왜 이렇게 많은거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공무원 3% 감축의 표본이 된 소방서 관계자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목욕을 하고 편의점을 헤매었다. 역시 데자와는 발견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편의점 내 데자와의 유무로 동네의 수준을 가늠하던 나 자신의 통찰력에 감복할 지경이었다. 제발 데자와 좀 팔아줘 포카리스웨트 말고... 그냥 동네 마트에 들러 우유나 사야겠다. 마트는 들를 때 마다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동네에서는 재개발 진행하고 아파트 들어온다고 난리가 났는데 마트는 망해가는구나. 음료를 찾다가 진열대에 페리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편의점도 아니고 동네 마트 진열대에 페리에라. 재래시장 마트에서조차 된장녀의 숨결을 느끼는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아아 머리가 아프구나. 요즘 쥬스 값은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다. 2천원대 중반을 넘어 후반대로 달려가는구나. 예전에 독일여행 하면서 이 동네는 뭐 이렇게 물가가 비싸 하면서 투덜거렸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우리나라가 모든 물가에서 선진국을 압도해가고 있으니. 내 연봉은 언제 선진국 수준이 되는가. 이런 실없는 생각을 이어가며 선키스트의 머스캣 주스와 유통기한이 다 되어 천원씩에 팔아제끼는 저온처리 서울우유를 사들고 집에 돌아왔다.

피곤하구나. 누가 안마라도 해줬으면 좋으련만.


p.s:머스캣 주스라더니 사과주스하고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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