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사람의 운이라는 것도 바이오리듬 그래프처럼 어떤 주기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곤 한다. 정작 바이오리듬은 잘 안 맞는 것 같긴 하지만,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결과가 겹치고 쌓여 좋고 나쁨을 가려내다보면 '운' 혹은 '불운'이라는 이름의 어떤 힘이 나를 밀어내거나 끌고가는 것만 같다. 그렇다고 이런 일들이 뭐 대단한 것이냐 하면 뭐 그런 것은 아니고. 예를 들자면 .. 책을 빌리러 갈 시간에 아는 사람 노트북을 봐 주다가 시간이 늦어 전철 하나의 운행시간 차이로 도서관에 도착하니 도서실 문을 닫고 있었다던가, 큰맘먹고 보조 디스플레이로 쓸 lcd 모니터를 주문했더니만 도착한 lcd 모니터의 액정에서 핫픽셀(모니터 액정에서 꺼져 있어야 할 픽셀이 계속 켜져있는 현상. 그것도 1 + 0.5만큼 번진 녹색 핫픽셀)이 나를 반긴다든가. 뭐 그런거.
적어도 내 경우에는, 행운보다는 불운의 흐름에 일관성이 있다고 믿는 편이어서 이런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면 좀 신경이 쓰인다. 특별히 예민해지거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아무래도 행동을 좀 더 조심하게 되고, 뭘 하더라도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고. 안 그래도 행동이 생각보다 몇백미터는 늦은 성격인데 조심까지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짜증이 날 때도 많지만 별 수 없다. 사람이란 일정한 나이를 넘기면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가면 위에 가면을 쓰듯 다른 성격을 뒤집어 쓸 수는 있어도.
문득 예전에 어디선가 '사람은 행운의 사건보다는 불운의 사건을 좀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불운한 사건을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서, 그 사건이 일어날만한 패턴(날씨, 사건, 사물, 무엇이든. 예를 들어 검은 고양이나 깨진 거울처럼)을 기억하고 그런 패턴을 회피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이 생존의 확률이 더 높았다, 라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그런 식으로 주위의 사건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나쁜' 사건을 분류해내고 그걸 기억에 집어넣고.
그러다보니 갑자기 핫픽셀이 생긴 모니터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운의 흐름에 순응하고 싶지 않아졌다고 해야 할까. 불운덩어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서 뭐가 됐든 다음 일을 고민해보자. 오늘 이걸로 뭐 하나라도 일을 끝내고 나면 기분이 좀 좋아질거야. 그래. 이렇게 생각하고 모니터를 꺼내고, 받침대를 꺼내서 둘을 조립하려고 봤더니, 모니터를 받침대에 고정시키는 쇠막대가 부러져 있었다.
... 나는 지금 모니터 반품 신청을 하고 택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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