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봐요라는 너의 말에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이제는 많이 들어 익숙해진 그 말이, 언제 또 보게될지 모르겠어요와 동일한 의미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운해서였을까. 추억과 감정과 심지어 그 상대까지도 잊어가는데 익숙해진, 망각의 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해도 좋을 나에게는 지금과 다음이라는 그 낱말의 간격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그 다음이 오기 전에 난 널 잊어버릴지도 모르는데. 네 입꼬리 끝에 걸려있던 미소도. 작은 손톱 모양도. 짧은 낱말들의 대화도. 어두컴컴한 카페의 블라인드 사이로 살짝살짝 비치던 햇살이 걸려있던 네 어깨도. 다 잊어버리고 멍청한 표정으로 널 대할지도 모르는데. 무엇보다도 이 간절함을 잊고 잃어버릴까봐 두려운데.
여전히 다음은 멀리에 있다.
위는 언제 해뒀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 다음이란 것은 내게 너무나 먼 거리여서라는 한 문장의 메모를 생각나는대로 풀어써본 것.
열심히 뭔가를 쓰던 때에는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떠오르던 생각을 그 자리에서 다 기록하곤 했었다.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거니와, 남에게 읽게 해주면서 어떤 글이 좋은 반응을 얻는지 따위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낙서일 따름이었다. 분량으로도 단지 한 문단 정도의 짧은 글일 뿐이었다. 나중에 읽어보면 부끄러운 글도 있었고, 아 이때에는 이런 생각을 했었군, 그냥 그정도.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어려운 것들 뿐이었다.
사는게 좀 바빠진 이후로는, 뭔가가 떠올랐을 때 한 문단 정도의 짧은 글을 적어내려갈 시간조차도 없어서 한두 문장의 메모를 남겨두곤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거나 했을 때 그 메모를 보고 그때의 생각을 떠올려 또 짧은 글을 쓰곤 했는데, 지금은 그나마도 제대로 이뤄지질 않아서 내 컴퓨터의 메모장, 노트, 포스트 잇에는 한 문장으로 끝나는 수수께끼의 글귀들이 넘쳐나고 있다. 방금 잠간 열어본 메모용 텍스트 파일에도 글귀가 가득해서, 가뜩이나 할 일이 많은 요즘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그래서 잠깐 짬을 내어(라고는 해도 사실 연휴동안 지금까지 노닥거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문장 하나를 뿔려보았다는 이야기.
참고로 그냥 손에 가장 먼저 잡힌 몇 개만 뽑아보자면 :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다음이란 것은 내게 너무나 먼 것이어서.
열일곱부터 내 인생은 컴퓨터와 음악뿐이었다.
사육되는 동물들의 생명이 눈물겹다.
'나'라는 글자를 적어넣는 그 순간에조차도 나는 변해간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대하여
비관 속에서 희망을
현실 속에서 꿈을두부, 곤약을 좋아하는 이유
이 문장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문장들에게도, 다음이란 것은 너무나 먼 거리일런지.
하지만 단순한 게으름의 발로일 뿐이지 않은가.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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