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폰 7 사용기

정말 부끄러운 사실을 하나 고백하자면, 케냘은 윈도우 폰 7 관련 프로그래밍 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윈도우 폰 7을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실물을 만져보거나 동작 화면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같은 물건이 대개 그렇듯 상당히 개인적인 물건이다보니 꽤 오랜 시간을 '자기 소유로' 만져보지 않으면 이 물건이 어떤 면에서 좋은 것인지 파악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윈도우 폰 7의 메트로 UI에 대한 호감도 있고, 원래 M$에서 제공하는 기술 환경을 좋아하는 편이다보니 윈도우 폰 7에 대한 기대감도 있긴 했지만 ...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이 글은 2011년 12월 26일에 작성했다)에서야 노키아의 루미아 710이 한국에서는 첫 윈도우 폰 7 기종으로 발매되었다. 그것도 매우 조용하게. 주위에 윈도우 폰 발매됐다고 얘기하니까 윈도우 7 다음 버전 나왔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 뭐라고 할 말도 없다...

어쨌든, 케냘은 윈도우 폰 7 개발 환경에는 익숙하지만(위에도 언급했지만 책을 썼다! 책에 들어간 소스도 직접 작성했다! orz) 윈도우 폰 7은 직접 다뤄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언락된 폰을 직접 주문해서 기기 등록을 하고 사용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그런 귀찮은 짓을 싫어하기도 하고, 기기 구입에 있어서는 가급적이면 실용적인 자세를 취하다보니 그렇게 돈을 들여 윈도우 폰 7을 개통해야 할까 싶기도 했고. 윈도우 폰 7이란 내 입장에서는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그대같은 뭐 그런 물건이었다. 그러다가 BITNA의 윈도우 폰 버전을 개발해야 할 상황이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주위 지인 중 한 사람이 외국에서 구입한 HTC Surround를 가지고 있어서 잠시 빌려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학교 선배이신 gksh님께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실 기기 없었으면 진짜 어쩔뻔했어...) 

어쨌든 직접 사용해 본 윈도우 폰 7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윈도우 폰 7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긍정적인 측면의)을 깨뜨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앱은 어떤 상황에서든 매끄럽게 동작했고, 데스크톱의 Zune과 Zune 플레이어 연동도 (생각보다는) 매끄럽게 동작했다.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절충이라는 측면에서 많이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도 원래 메트로 UI가 맘에 들긴 했었지만, 텍스트 기반의 UI나 레이아웃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꽂힐 수 밖에 없는 인터페이스였다. Me/People 허브도 사용해보기 전까지는 Windows Live 기반의 허접한 '내 상태 알림'의 아류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페이스북과의 연동은 정말 훌륭했다. iOS의 FlipBoard 앱을 타이포그래피를 강조해서 만들면 이런 느낌이 날까. 취향에 따라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뉘긴 하겠지만, 아기자기한 화면보다는 텍스트 중심의 정보 전달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사용을 권해볼 만 하다.

현재 윈도우 폰을 사용해 보면서 느낀 문제는 너무나도 많지만 생각나는 것을 그냥 막 언급해 보자면, 하나는 폴더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앱을 못 찾겠어... 윈도우 폰 7의 라이브 타일 런처는 안드로이드의 위젯이나 iOS의 뱃지 알림과는 차원이 다른 기능이기는 하다. 런처에 자주 쓰는 앱을 등록해 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치 iOS의 웹 페이지 앱(모바일 사파리에서 특정 웹 페이지를 런처에 등록하는 기능. 등록된 웹 페이지는 앱 아이콘처럼 초기 화면에 표시된다)을 확장한 것처럼 일반 앱에서도 실행 타일을 생성할 수 있는 기능은, 직접 써보지 않으면 이게 왜 좋은지, 왜 대단한지 알 수가 없다. 근데 사람들에게 이게 어떤 기능인지 설명하기도 어렵긴 하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 프로그램 시작 메뉴는 단순히 윈도우의 프로그램 시작 메뉴 화면을 폴더 없이 아이콘을 죄다 꺼내놓은 형상이다! 지금 사용하는 HTC Surround의 경우 개발용도로 사용하느라 프로그램을 몇 개 깔지도 않았는데, 거기서도 실행 아이콘을 찾는게 귀찮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자주 쓰는 앱을 악착같이 라이브 타일에 등록하지 않는 한 사용하기가 참 번거롭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앱이 비싸다/없다는 점이다. 이건 뭐 ... 마켓플레이스에 직접 접속해 보시라. 말이 필요 없다.

개인적으로 결론을 짓자면, '이거 뭐 꼭 써야 하나... 현재 아이폰이면 만족스러운데...'가 솔직한 감상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는:

What's new in Evernote 2.0 for Windows Phone?

App of the week: Evernote [Windows Phone]

에버노트 이 미친 개발자 팀이 대체 윈도우 폰 버전으로 무슨 물건을 만든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모를 많이 하다보니 스크랩북 성격의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사용해왔었는데, OneNote(이건 윈도우), Journler(이건 맥)를 거쳐 최근에는 Wunderlist + Evernote 투 톱 체제로 정착한 상황이다. 짧은 메모는 Wunderlist에 모아서 Evernote에서 긴 글을 만드는 식으로 메모를 하고 있는데, 이 Evernote의 윈도우 폰 버전이 정말 물건이다. 아이폰용 버전이나 아이패드용 버전을 쓰면서 '아 이거 좋긴 좋은데 텍스트가 그다지 정돈되어보이지도 않고 빠르게 팍팍 반응하지도 않고 이건 뭔가 옳지 않은 것 같아'라는 느낌이 들어 모바일 환경에서는 거의 Wunderlist를 쓰고, 데스크톱에서만 Evernote를 사용했었는데, 윈도우 폰 버전은 정말 뭔가 다르다.

모바일 환경의 쾌적한 메모장만 있다면 다른 스마트폰 기능따윈 필요 없어! 라는 사람이라면 윈도우 폰 사고 Evernote 설치하시라. 농담이 아니라 케냘은 지금 Evernote 때문에 윈도우 폰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사실 루미아 710이 아니라 루미아 800이 한국에 발매되었다면 당장 질렀겠지만 ... 710은 좀 애매합니다잉;)

사실 아이폰으로도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 아이폰 개발자이지만 아이폰 덕후는 아니라구요! - 윈도우 폰으로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하다.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퀄리티만 대충 아이폰과 비슷하게 나와준다면 ... 이라고 생각했지만 HTC Surround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보니 택도 없다 (...) 으음 ... 이러면 서브 디카를 또 사야 하나요 아니면 아이폰 4를 공기계로 만들어 디카로 써야 하나요. 고민이로다.

여튼 좀 기둘려 보자. 또 알아? 루미아 800 출시 소식이 갑자기 터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