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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대선출마 확정. 그리고...

솔직히 착잡한 기분이다.



사람마다 안철수라는 이름 석자가 갖는 의미는 아마 제각기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에는...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한 때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안철수라는 이름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컴퓨터 학원에서 우연히 읽은 잡지에서였다. 그 때의 나는 아직 프로그래머가 되려는 생각도 없었던 때였고, 어셈블리는 커녕 c 언어로 제대로 다루지 못하던 초딩 시절이라 '백신을 만들 때는 어셈블러를 사용하는구나' 정도를 겨우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BOOT와 FAT와 데이터 영역이 무슨 의미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DOS에 익숙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니까) Programmatic하게 디스크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냥 신기한 내용일 뿐이었고, 안철수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 의사(당시는 의대생이었지만). 모두가 선망하는 의사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하는 신기한 사람.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몇 년이 흐르고 내가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후에야, 우연한 기회를 통해 당시의 소스코드를 구해서 분석해 볼 일이 생겼었고, 그가 했었던 작업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이제 x86 어셈블리 명령어를 다시 살펴보려면 레퍼런스가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ㅇㅇ...) 수백 수천의 바이러스의 유형과 작동 방식을 분석하고, 검색을 위한 시그니처를 만들고, 작동 방식을 거꾸로 거스르거나 혹은 각종 workaround을 통해 원래 상태로 복원시키는 코드를 하나하나 만들고...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 사람은 얼마나 많은 밤을 보냈을까.


그가 순수히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런 작업을 했었을지, 일말의 공명심 같은 것이 있었을지, 나는 그가 아니기에 알 방도는 없다. 내가 상상해 보았던 그 과정은 - 어떤 종교적인 수행의 과정에 가깝지 않았을까. 그렇게 상상했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의 코드를 분석하면서 그의 코드에 담긴 선의를 읽을 수 있었다. (그저 개인의 느낌일 뿐 아니냐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그 이후에는 다들 아는 것처럼, 안철수는 기업가, 교수 등으로 삶의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때쯤에는 안철수라는 이름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계속해서 수행하듯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갈 것이라 믿었고, 혹시 내가 운이 좋아서 그보다 좀 더 오래 살게 된다면 훗날 그의 삶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진지하게 어느 하나에 몰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좋아하고 - 그런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좋아하니까. 그가 계속 그의 삶을 오롯이 쌓아나갔으면 하고 바래왔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어느 시점에서인지 - 그가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그는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어느 위치에 서든지 더럽혀질 수 밖에 없는 정치라는 지형 위에서.




대선출마 기자회견에서 그는 낡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악당을 때려잡기 위해 악당이 되어야 하는 정치판에서, 더 이상 악당이 되지 않겠다고. 안철수와 그를 돕는 사람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알 수도 없고 장담할 수도 없다. 혹은 정말 그런 정치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내가 확실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 이 정치판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지켜가며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내가 먼 훗날에 되돌아보기를 바랬던 그의 삶도 더 이상은 말끔한 궤적으로만 기록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를 찬양하고 누군가는 그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그를 조롱하고 누군가는 그를 증오할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착잡하다. 

코드를 통해서, 안철수의 선의와 그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으로서.




이번 주 내에 재외자 투표 등록을 할 생각이다. (케냘은 지금 미국에 거주중이다) 기자회견이 시작되는 순간까지도 안철수씨가 정치에 나서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랬지만, 어쨌든 그가 출마를 천명한 지금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지지를 보태려고 한다. 


그가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라기보다는 - 스스로 밝혔듯 - 그가 스스로 감당하고자 하는 시대의 숙제를 잘 감당해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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