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정치 관련글은 안 쓰지만 개인적인 소회 차원에서 남겨두는 글.
어제 선거 당일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한참동안을 연락도 못 주고 받은데다 요즘 페북에 글도 안 올라오기에 그냥 지나가는 투로 말을 걸었으나-
… 뭔가 답 메시지에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 그 왜, 있잖은가.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될만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미리 짧게 말을 끊는’ 대화라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보수적인 스탠스를 가진 친구인지라 지금 대화가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이 부분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보수 쪽이 아니다) 투표 분위기 어떻냐고 한 마디 묻고 대화를 마쳤다.
다음 날 투표와 개표가 끝나고, 공황과 성토가 한 바탕 지나간 후-
문득 어제 메신저의 대화가 떠올라서 간만에 그 친구의 블로그에 들러보았다. 평소에 보수파 입장의 글도 간간히 쓰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 생각 없이 글을 훑어보기 시작했는데, 어째 일부 내용이 그간 선거 정국에서 우리의 애국보수 친구들이 게시판에 달던 내용들이다. 순간적으로 ‘아 이쯤에 무슨무슨 반박 덧글이 달려있었지’하는 것이 떠오를 정도로!
이런 내 친구가 일베라니! … 란 건 물론 농담이고. (하긴, 모를 일이다)
친구의 블로그에서 한참 글을 읽고 있노라니 뒤통수가 싸해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린 그냥 서로 다른 지형에서 서서 편을 갈라 싸우고 있는 것 아닌가. 브레인들이 만들어 놓은 논리와 자료를 가지고, (그저 자기 먹고 사는데 바쁘다보니) 인스턴트 음식처럼 미리 만들어져 있는 프레임 위에 간단히 올라서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저 와우에 접속한 얼라이언스와 호드처럼.
(사람의 죽음을 가지고 이런저런 논리에 꿰어맞추는 걸 무척 싫어하긴 하지만 당장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이거라서 일단 적어보자면) 게시판에서, 나이 지긋하신 유권자가 박근혜가 불쌍해서 표를 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럴 수가 있냐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럼 노무현의 복수 때문에 투표를 하는 건? 나도 노무현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지는 사람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유신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도 육영수, 박정희의 죽음에 대해 분명 어떤 감정이 있을게다. 그건 물론 노무현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겠지만, 그 때문에 박근혜에게 표를 줄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이 서 있는 지형이 달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거 아닌가.
어쨌거나 이번 선거는 극에 달한 논쟁(을 빙자한 개싸움) 덕택에 계속 지켜보고 있기가 무척 힘들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 등에서 일어나는 공방전 뿐만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신문에 올라오는 뉴스도 죄다 진영논리가 반영된 기사로 변해버려서 읽기가 껄끄럽다.
그래서 결심한 것도 몇 가지 있는데, 이제 앞으로 한국 관련 기사는 가급적 외국 신문에 올라온 내용만 읽을까 한다. 논조는 둘째치고 있는 사실은 좀 그대로 두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 뉴스를 계속 읽는게 미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이제 뉴욕타임즈에서 박근혜가 독재자라고 주장하면 난 그냥 박근혜가 독재자라고 믿을란다.
피곤하다.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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