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맥북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물론 적당한 가격에 쓸만한 노트북을 구입하려는 의도도 일부분 있었다. 어차피 노트북이니까 큰 작업은 돌리지 않을거고, 웬만한 작업은 회사에 있는 가상 머신 전용 서버에 원격 터미널로 접속해서 돌리면 되고, 아주 불편하지만 않으면 되니까. 물론 예쁜 외관도 어느 정도는 일조했지만 이쁘기만한 장비를 사는 성격은 또 아니고… 그리고 또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아, 맥의 UI는 과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같은게 궁금하기도 했었고. 대체 맥 유저들은 무슨 미친 생각으로 iTunes(이 프로그램 왠지 영단어로 적어야 느낌이 제대로 전달된다. 아이튠즈. 하면 영 뭐가 이상해)나 퀵타임 따위 느려터진 프로그램을 아무 불평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뭐 그런 이유도 있었고. 와 생각하다가 보니 이유가 꽤 여러가지네.
하지만 저런 이유들은 다 부가적인 것이었고, 사실은 최근의 심리 상태가 더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경력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경력이지만, 그 동안의 메인 커리어를 버리고 다른 영역의 일을 시작한다… 라는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더라. 일이 어렵거나 힘든거야 별 희한스러운 프로젝트들을 겪으면서 넘겨가는 방법이나 요령도 어느 정도 터득했지만,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는게 더 큰 문제였다. 문제가 생겨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고, 스스로 업무에 관련된 뭔가를 공부하기 위해서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고, 나름대로의 지식을 다른 방식으로 조직해야 하고… 단순히 업무의 영역이 다른 것이 아니라 업무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했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 있은지 이제 반년이 가까워져 가는데, 업무는 그럭저럭 처리하고 있지만 솔직히는 아직도 적응이 덜 된 상태인 것 같고. 그리고 업무뿐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있고… 하지만 밝힐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맥’이라는 컴퓨터 환경 - 낯설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고, 적응도 어려울 - 에 접근해보고 싶어졌다. 뭔가 좀 쌩뚱맞긴 하지만 사람마다 자신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해결하는 방식,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방식도 제각기 다른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다. 낯선 업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감정적인 트레이닝을 위해서 낯선 컴퓨터 환경에 도전한다라… 하지만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였고, 각오는 하고 있었다. 못해도 리눅스를 처음 접했을 때 만큼은, 아니 혹은 그 이상 불편하리라는 생각은 했었으니까. 생경한 운영체제. 낯선 윈도우 화면. 단축키를 몰라서 - 아니 기능 자체가 존재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어서 마우스 포인터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하나하나 클릭해보는 느낌. DOS 환경에서 윈도우 환경으로 처음 넘어왔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니다 그때는 윈도우에서 DOS 창을 띄울수라도 있었지. 이건 뭐 다 똑같은 기능이라고 해도 접근성 면에서는 다 다르니…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고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고.
여기에 적응하려면 또 얼마나 시간이 걸려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맥이 불편해지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 윈도우에 적응하는데 걸렸던 시간. 혹은 누군가를 마음에서 털어낼 만큼의 시간. 혹은 업무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깨닫는데 걸리는 시간… 여튼 분명한 건 아직 어떤 것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는 거다. (적어도 당분간은) 맥북을 팔아치우겠다고 nbinside로 달려가지도 않을거고, 일이 적응이 안 된다고 그만두지도 않을거고. 다만 조금이나마 평온해질 때까지는 잠시 마음을 비워둬야겠지만. 그것도 털어내기보다는… 아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깨달을 즈음이면. 이 생경한 감정도. 불편함도. 그냥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익숙해질 수 있겠지.
ps. 참고로 퀵타임과 iTunes, 그리고 PDF 파일은 맥에서 정말 인정사정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구동되더라. 윈도우용 iTunes는 완전 사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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