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을 바꿨다.
지갑 하나가 추석 선물로 들어왔다. 가죽 소재의 반으로 접히는 지갑이다. 이 지갑이 그리 마음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써 오던 장지갑은 많이 낡아 옆구리 터진 지갑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낡은 지갑을 계속해서 사용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고, 장지갑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새 지갑으로 내용물을 옮겨 넣으려고, 원래 쓰던 지갑에서 내용물을 모두 꺼냈다. 문득 내용물에서 천원짜리 구권이 눈에 띄었다.
이 지갑을 사준 h가 넣어준 돈이다. 누군가에게 지갑을 선물할 때는 행운의 의미로 지폐를 하나 넣어주는 것이고,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라고 설명해주었었다. 하지만 지갑을 바꿀 때는 이 돈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냥 써버리면 되는걸까, 아니면 새 지갑에 넣고 다녀야 하는걸까. 만약 새 지갑을 선물받는다면 그 사람도 지폐를 하나 넣어줄지도 모르지. 그러면 예전에 받은 돈을 새 지갑에 계속 넣고 다니는 것도 좀 이상하다. 어쨌거나 7년 전의 일이다. 7년간 내게 일어난 일을 돌이켜보면, 적어도 이 지폐는 그렇게 큰 행운을 가져다주지도, 그렇다고 큰 액운을 몰고 오는 것도 아닌, 효력같은 건 없는 것 같다. 써버리자, 라고 생각하고 새 지갑에 지폐를 넣었다.
지폐를 다시 발견한 건 오늘 점심. 점심을 먹고 계산을 막 하려던 찰나였다. 계산에 천원짜리가 필요했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구권을 꺼내 점심값을 계산할 a에게 내밀었다. a는 구권을 오래간만에 본다는 듯 잠시 천원짜리를 힐끗 바라봤지만, 이내 관심을 잃은 듯 내 몫의 점심값을 받아들었다. 그렇게 7년동안 내 지갑을 맴돌던 지폐는 내 손을 떠났다.
나이라는 것을 먹어가며 스스로가 발전한다고 느껴지는 것은 별로 없지만, 시간과 기억에 대한 감각만큼은 착실히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인 기억들에 할애된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아져가고, 기억 또한 언젠가는 잊혀져버릴 것들이라고 체념해버린다. 잊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내 성격은 끝내 못 고칠 것만 같았다. 누군가 그건 흘러가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라 말했었다. 아니었다. 그건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내가 겪은 시간의 길이가 해결해 주는 일이었다. 이미 살아버린 시간이 길어지고, 기억과 기억을 붙잡는 집착도 그만큼 엷어진다. 엷은 기억은 무게감이 없다.
엷어진 기억은 때론 슬프지만, 괜찮다. 오늘의 점심이 되어 하루라도 날 지탱해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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