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잠시 산책을 했더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목련도 아직 채 만개하지 못한 꽃잎을 살짝 드러내고 있었고, 밝은 빛깔의 흔적이 여기저기 어른거렸다. 봄이구나. 봄이로구나. 하지만 오늘은 야근. 덕분에 지인과의 약속도 취소. 선배가 생일이라고 술 먹으러 오라고 전화왔는데 거기도 못 가고. 심야영화나 보고 집에 들어갈까 했는데 결국 그것도 너무 늦어져서 못 보고. 야근이라고 몸 망가져, 주위 사람들도 못 만나, 보고 싶은 영화도 못 봐. 무슨 노예생활이냐. 아니 노예보다도 못해. 차라리 노예면 주인이 앞으로도 좀 잘 부려먹기 위해서 신경이라도 써 주겠지. 이건 노예보다도 못해. 그냥 늙어갈 때까지 고정비용으로 한없이 착취당하다 결국 버려지겠지. 차라리 노예가 낫겠어. 인간은 그저 비용으로 충당될 수 있는 수단일 뿐이야. 자본은 알량한 비용을 내 주고 조금만 더 열심히. 조금만 더 열심히. 라고 말하며 기껏해야 tv를 볼 수 있는 핸드폰 따위를 살 수 있는 미래를 약속한다. 그리고 사람은 파괴되고 조금만 더. 같은 주문을 되뇌이며 세뇌된 듯 앞으로 앞으로.
이런 삶에 무슨 가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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