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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한참 좋을 때지

그저께 오래간만에 찾아간 압구정역 사거리에는 미칠듯이 바람이 불었다 - 학동사거리로부터 천천히 걸어올라가며 지나친 건물들은 예전에 보았을 때처럼 이질적이었고, 저 건물 내부에 있을 사람들의 계층과 내가 속한 계층을 나누는 조각처럼 느껴졌다. 나는 하위계층인가. 나는 아직도 인식이 덜 여문 인간인가. 거리에서 마주친 카페의 이름은 April, 30였다. 4월의 압구정 거리에서 4월생의 서른살 남자가 카페 April, 30를 지나치다. 멍청하게 흘러가는 맥없는 일상에도 우연은 찾아든다. 잠시나마 삶에 위안이 찾아드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시 이어가야 할 나날들을 떠올린 후 곧 어두운 마음이 되었다.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삶이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삶을 위해서 묶어둔 마음은 곧잘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이젠 움직이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

어제는 삼청동에 갔었다 - 몇번인가 갔었던 삼청동의 거리는 그저 차를 탄 채로 지나쳐야 했다. 거리는 사람들로 그득했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기자기했던 느낌은 간곳이 없었다. 평일의 한가로운 시간이었다면 예전에 내가 이 거리에서 받았던 인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 대학을 다닐적에 누렸던, 어디든 찾아갈 수 있었던 시간은 더 이상 내게 없다. 한가함과 자유를 잃고 난 무엇을 얻었을까. 커리어 패스는 내게 너무나 추상적이다. 가끔 생각을 해보면 세상에는 룰이 존재하는듯 하면서도 나비효과와 이런 세상의 룰이 대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수많은 것들이 저마다 이유를 토해내며 상호효과를 일으킨다. 날개짓하면 날아오를 수 있을까. 여기서 헤엄쳐 위로 솟아오를 수 있을까. 솟아오른다고 해서, 언젠가 비행기에서 보았던 구름 위의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마셨다 - 아버지는 드라마를 보며 TV 화면에 나온 산의 푸르름에 감탄했다. '지금이 한참 좋을 때지' 어머니가 말했다. 꿀꺽, 콜라를 한 모금 삼켰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금이 한참 좋을 때지. 그 말의 울림이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저 푸르름도 다음 해면 다시 찾아오겠지. 저 나무들에게는 지금이 한참 좋을 때이고, 그 좋은 때는 다시금 찾아오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이 한참 좋을 때라면 더 좋지 않은 시기도 올까. 당장 그런 시기가 정말 찾아온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둬야 하는게 아닌 생각이 든다.

정말 지금이 한참 좋을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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